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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익명으로 스펙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요!

총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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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에필로그-스펙업 그 이후

스펙업은 회원 수가 30~40만 명 정도 일 때까지는 혼자 운영하였다. 당시 취업 시장에서는 스펙업 운영자가 5명은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스펙업 운영에 몰두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스펙 관련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각 기업의 담당자들이 알아서 스펙업에 좋은 정보를 공유해주었고 스탭을 비롯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해주는 분들이 카페 운영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그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한, 소소한 혜택 밖에 드리지 못한 점도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그렇게 스탭 분들이 있었다고는 하나 스펙업은 따로 직원은 없는 1인 기업이었다. 1인 기업으로서도 큰 문제없이 운영은 하였다. 오프라인 세미나를 하여도 항상 많은 참여자가 있었고 온라인 광고 등의 프로세스도 모두 독자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그럼에도 자금력을 갖춘 경쟁사를 보면서 종종 한계를 느끼기도 하였다.

결국 투자를 받기로 결정하여 법인 기업을 만들고 직원도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취업 교육, 독서실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성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회사는 차츰 성장하였다.

동시에 부업으로 치킨집을 하나 차렸다. 누가 봐도 뜬금없었지만 스펙업을 하면서 소개받은 브랜드 담당자를 통해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창업하였다. 사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반대하였지만 당시 어떤 것을 해도 성공시켰던 자신감이 있었고 부업으로 하는 것이니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스펙업 경영에 전념해야 했기에 치킨집은 매니저에게 운영을 일임하였다. 그런데도 혹자는 방송에 출연하여 모 취업 컨설턴트가 알고 보면 치킨집 사장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스펙업을 운영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기에 무시하고 넘어갔지만 그 분이 그런 비난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었는지는 가끔 궁금해진다.

그렇게 여러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며 바쁜 나날이 다시금 계속되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업무를 보았고 그렇게 시간을 벌기 위해 차를 운전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스펙업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자세한 건 여기에 적기엔 너무 길고 어려운 이야기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피땀 흘려 만든 커뮤니티였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진행되는 과정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 그 무렵부터 불면증이 생겨 오늘 날에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 당시의 풀 스토리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공개하도록 하겠다.

힘겨운 나날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스펙업을 떠나고 나니 우선 일부 인맥이 좁아졌다. 정확히는 믿었던 일부 사람들한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다. 이것이 가장 힘겨웠는데 지나고 보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나온 전지현의 대사가 떠올랐다.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 참 드러울 때가 많았는데...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딱 걸러져...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척!’

물론 개인적으로도 다 잘했다고 볼 수 없지만 많은 부분에서 아쉬웠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도 힘이 들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과거의 내 성과와 능력을 믿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스펙업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은혜를 갚고 싶다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 그 분들 덕분에 다시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가끔 스펙업 같은 플랫폼을 다시 만들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아왔고 지금도 받는다.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하더라도 과거의 모습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영화관 한 번,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봤고 유행하던 드라마, 예능도 챙겨볼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과 노는 횟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연애도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생겼던 공인(?) 이미지 때문에 별로 경험이 없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일만 하느라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많은 세월을 보냈는데 그러한 점은 너무 안타깝고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허무할 때가 있다.

창업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조직 생활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당시 미처 못했던 직장인이 되어 보기로 했다. 무역 회사, 스타트업, 에이전시, 언론사 등 여러 경력을 쌓았고 그 속에서 다시 성과를 만들어내어 인정도 받았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활성화시켜 보기도 하고 오프라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매출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등 열심히 달렸다.

물론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아니다. 다만 경험상 얻은 지론은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특성을 감안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절대 시간 투자, 플랫폼 운영자가 회원과 소통하려는 노력, 그리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성공할 기초는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랬다.

시간이 더 흐른 후 운이 좋게도 현재는 국내 최고의 취업 플랫폼인 ‘사람인’ 콘텐츠팀 팀장이 되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처음 몸 담았던 취업 시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은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 부분에 대해 많은 분들이 좋게 평가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다시 스펙업 시절 이상의 열정을 표출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특이한 여러 경험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이 미운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좋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일에 도움이 되고 성과를 만들어 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 사람인의 구성원 분들, 채용 시장의 여러 기업 관계자, 그 밖에 모든 분들 언제든 편하게 연락주시면 좋겠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온라인 플랫폼을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윈윈했으면 좋겠다. 차 한 잔, 밥 한 끼 같이 하면서 함께 일도 만들어 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인사이트를 넓히는 기회는 언제든 대환영이다.

컨택 포인트를 남기니 편하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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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설립자 2021.11.0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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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10-취업과 창업 사이

이 때부터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창업에 대한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맞닥뜨리니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었다. 아무튼 당시 상황은 이력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제휴 전화는 쏟아졌고 그에 따라 오프라인 미팅도 이루어지는 등 온전히 취업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삼성전자 인적성평가가 있던 날 고사장을 가는 대신 스펙업 업무를 보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기업의 면접에 가서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운 좋게 합격하여도 스펙업 때문에 입사를 포기하는 일도 반복되었다.

결국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창업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스스로 선택했다기 보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무렵 5학년 1학기도 끝나 졸업을 하게 되었고 스펙업 회원은 10만 명을 넘었다.

스펙업은 어느 순간 국내 최고의 취업 커뮤니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본의 아니게 개인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사, 매거진, 대학교 신문 등에서 인터뷰를 하는 일이 많아졌고 커뮤니티를 키운 노하우에 대한 특강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라디오 방송 출연 제의도 받았는데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하였기에 방송을 할 자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방송국에서는 취업 커뮤니티 운영자로서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하여 수락하였고 이어 TV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언론사에서 취업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게 되고 스펙에 대한 책도 출간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취업 컨설턴트 자격증까지 취득하면서 취업 컨설턴트 및 자기소개서 특강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도 쌓게 되었다.

‘스펙업 운영자’라는 타이틀로 인지도가 생기니 언제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았고 여러 업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로 인해 폭넓은 인맥도 쌓았고 그러면서 오프라인 교육 등 사업 확장에 대한 구상도 이어 나갔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한편으로는 하루 하루가 기대되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상이었다.

스펙업설립자 2021.10.2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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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9-졸업 유예와 스타트업 창업

충격으로 한 동안 멍한 상태였다. 일단 그 시점에서는 딱히 취업할 만한 기업이 없었다. 기존에 합격한 기업들도 입사 포기를 하였고 공채도 거의 끝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수한 학점 한 과목을 포기하고 5학년 1학기를 다니는 졸업 유예 결정을 내렸다. 다시 취업 준비와 스펙업 운영을 병행해보면서 다른 기회를 잡아볼 생각이었다.

한 학기를 더 다니는 것은 우울한 일이었다. 경쟁에서 뒤쳐진 루저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자책도 해보았지만 그러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바빴다.

스펙업 관련 일이 급증한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이 필요로 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런 정보를 콘텐츠로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 커뮤니티의 게시글이 포털 사이트에 잘 노출되는지를 파악해보는 검색 최적화 작업 등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회원들과의 접점을 높여 충성 회원을 만드는 것에도 중점을 두었다.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티라도 오프라인으로 회원들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원들과의 친목도모를 위한 정모와 취업 관련 세미나 등은 그런 생각에 기인하여 진행되었다.

회원들이 쓴 거의 모든 글에 댓글을 달고 관심을 가져준 것에 더해서 이러한 오프라인 활동은 운영자와 회원들 간의 소통을 배가시켜 주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회원들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쌓기에 되자 그들은 누구보다도 스펙업의 충성 회원이 되어 커뮤니티 운영과 홍보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무렵 스펙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개인적 운영의 차원을 넘어 비즈니스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였다. 여기저기서 제휴 문의가 쏟아졌고 그로 인해 오프라인 미팅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5학년 1학기는 두 과목 밖에 수강을 하지 않았음에도 학교 수업은 자연히 밀려나게 되었다.

온라인 채널 운영, 제휴 마케팅, 서비스 및 컨텐츠 기획, 광고 관리, 행사 진행, 회계 등 모든 업무를 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부족한 부분은 공부해서 보완해 나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된 것이다.

스펙업설립자 2021.10.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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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8-잔머리의 대가

한편 스펙업은 꾸준히 성장하였다. 커뮤니티가 커지다 보니 제휴 문의도 들어왔다. 지금은 당연한 그러한 문의가 당시에는 굉장히 신기하였는데 영화 시사회 참가, 출판사 도서 이벤트, 대학로 소극장 공연 티켓 제공 등 내용도 다양했다.

덕분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회원들에게 다양한 경품 제공을 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수백명에서 몇천 명까지 이벤트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발표하는 일도 보통은 아니었다.

취업 준비도 계속 하였는데 우연히 받은 정부 기관 교육을 통해 한 중견기업의 인턴으로 합격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4학년 2학기 개강 전에 출근하기를 요청받았으나 정중히 거절하였다. 다시 2학기부터 출근하라고 했으나 역시 거절하였다. 그 회사에는 졸업 학점이 모자라 학교를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상은 좀 더 좋은 곳에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상 밖으로 그 회사는 한 달에 두 번만 출근하라는 제안을 다시 하였다. 그렇게 3개월을 일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조건이었다. 그 정도면 아쉬울 게 없어서 수락하였다. 한 달에 두 번이면 다른 곳에도 충분히 도전해볼 시간적 여건이 되었고 마땅치 않으면 그 회사에 취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인턴 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도 보러 다녔다. 인턴으로 있는 곳보다 더 낫다고 생각되는 기업에 주로 도전하였다. 혹시 합격을 했더라도 고민 끝에 인턴으로 소속된 곳과 별 차이가 없으면 입사를 포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4학년 12월이 되던 새벽 무렵 갑작스럽게 인턴으로 일하던 곳의 임원에게 이메일이 하나 왔다. 회사 사정상 정규직 전환을 못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대부분 기업의 하반기 채용이 마무리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답변은 그대로였다.

내 스스로 잔머리를 너무 굴린 탓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되어 아직도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해당 기업의 이름은 이 글에서 공개하지 않도록 하겠다.

스펙업설립자 2021.10.1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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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7-잘못된 선택

4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학점은 다행히도 3.0을 겨우 넘겨 놓은 상태여서 공채를 진행하는 기업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학점 3.0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전공 학점은 나쁜 상태 그대로였고 그러다 보니 전공과 관련이 없는 마케팅 등의 직군에도 지원을 많이 해서 서류 전형의 합격률이 좋지는 않았다. 스펙업도 성장하고는 있었지만 걸음마 단계여서 어필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삼성전자 부사장 명의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으니 삼성전자에 지원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그러나 문득 집에서 회사까지의 출퇴근 거리가 걱정이 되었고 그런 걱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으로 이어지고 만다.

삼성전자 대신 출퇴근 거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삼성SDS에 지원을 해버린 것이다. 서류전형은 지원 자격만 맞추면 되었기에 쉽게 통과하였고 삼성그룹 인적성 검사도 무난히 합격하여 면접에 가게 되었다. 면접장에서도 대체적으로 답변을 잘 하여 합격할 가능성도 보였지만 면접관이 마지막으로 한 질문이 문제였다.

“삼성전자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큰 상을 받았는데 왜 거기가 아닌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요?”

차마 먼 곳으로 출퇴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을 할 수는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그 순간 면접 분위기는 급반전하였고 불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다. 물론 예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많은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인적성 검사, 필기 시험, 면접도 보곤 했으나 마음에 드는 곳은 불합격하고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은 합격하여 입사를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때도 공대생임에도 수학을 잘 못한다는 것이 가끔 발목을 잡았다. 몇몇 기업의 인적성 검사에 응시하게 되면 공간지각능력을 요하는 도형 전개도 관련 문제가 나왔는데 아이큐 검사를 해도 그런 문제는 거의 최저점을 받았을 정도로 취약한 분야였다. (그럼에도 아이큐 검사 결과는 좋은 편이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제대로 풀지 못하고 찍을 수밖에 없었던 적이 많았고 결과는 뻔하였다.

스펙업설립자 2021.10.0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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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6-카페 운영과 취업 준비

그런 노력의 결과였을까? 스펙업 커뮤니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회원 수 1명으로 출발했던 그 공간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그에 따라 정보의 양도 늘어갔다.

커뮤니티란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생긴다. 그에 따라 운영 방향의 일부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고 회원들 간에 의견 다툼 등 분쟁에 대한 중재나 조율도 운영자의 몫이다. 스팸성 광고글 등의 관리에 들어가는 시간도 점점 늘어난다. 당연히 할 일은 더욱 많아지게 마련이다.

정보 공유를 위한 게시글 업데이트도 여전히 이어갔다. 그 덕분에 스펙업은 대한민국에서 스펙 관련 정보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빨리 업데이트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주변에 굳이 알리지 않아도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내주는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운영자 역할을 하면서 다른 취업준비생처럼 토익이나 토익스피킹 시험도 보고 자격증 시험도 보러 다녔다. 또한, 가장 큰 문제인 학점을 올려보려고 노력했다. 4학년 당시 학점이 4.5 만점에 2.93 밖에 되지 않아 여전히 3.0 이상을 요구하는 기업에는 이력서조차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은 약간의 잔머리가 동반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성향으로는 전공 과목에서는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글 쓰는 것과 관련된 수업을 집중 공략했다. 더욱이 평소 가지고 있는 습관이 수업 시간에 필기도 하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토대로만 시험을 보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잘 통하는 과목만 골라 수강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학점 제한을 두지 않은 기업에 꾸준히 이력서를 냈다. 당연히(?) 대부분 불합격하였지만 그 낮은 학점으로 대기업 포함 몇몇 기업의 서류를 통과하기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SBS였는데 역시나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필기 시험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자기소개서 쓰는 건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스펙업설립자 2021.09.2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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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5-스펙업을 만들다.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함과 동시에 1년간 느낀 바를 토대로 계속해서 무언가에 도전하였다. 대학생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스펙을 쌓았고 그럴 때마다 여러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참고하였다.

그런데 평소 웹 서핑을 즐겨하던 입장에서는 관련 사이트나 커뮤니티의 정보가 부족하여 아쉬웠다. 그래서 이럴 바에는 ‘내가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네이버에 카페를 개설하였다. ‘스펙업’은 2008년 3월 21일, 그렇게 만들어졌다.

스펙업이라는 이름은 내 자신이 백지 이력서에 스펙을 쌓았던 것처럼 그 공간을 찾은 사람들이 유용한 정보를 보고 스펙을 올리라는 마음에서 지었다. 회원 수 1명으로 출발한 그 빈 공간에 인턴, 대외활동, 공모전, 봉사활동 등의 게시판을 만들고 직접 검색한 정보를 업로드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곳에 흩어진 정보를 한 군데로 모으다 보니 툭하면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나 힘들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찾아낸 정보를 보고 나도 지원서를 내고 게시판에도 올렸다. 신기하게도 그 글을 보고 가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경험했던 대외활동에 대한 후기를 남기자 가입자는 더욱 늘었고 댓글도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그런 작업을 반복하였는데 때로는 시험 기간과 겹치기도 하여 공부와 카페 운영을 병행하였다. 한 번 시작한 것을 중단하기는 싫었고 기왕 시작한 이상 다른 사이트나 커뮤니티와 다르게 정보 공유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외출 시에는 노트북 지참이 필수였고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 가면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일이 있어 장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올릴 만한 정보는 없는지, 혹시 스팸글이 올라오지는 않는지 확인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올 경우에는 거의 밤을 새며 게시글을 올렸고 해외 여행을 갈 때에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숙소를 찾는 것이 1순위였다.

스펙업설립자 2021.09.1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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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4-진짜 대학생활

한 번 좋은 성과를 내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로 관심 가는 대외활동이 있을 때마다 지원하였고 꽤 심심치 않게 합격하여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활동의 숫자만 늘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성과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였다.

그 중 하나 예를 들면 삼성전자에서 진행한 ‘자이제니아’라는 대학생 홍보대사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웹진 제작팀의 팀장을 맡았다. 그 당시 주로 웹진에 게재될 다양한 홍보 기사를 작성하였는데 내가 쓴 글이 삼성전자 사내에서 회자되기도 할 정도로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활동하는 6개월 동안 월별 평가에서 한 번 빼고 모두 1등을 하여 최우수팀으로 선정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최우수상 수상자가 되어 삼성전자 부사장 명의의 표창장을 받았다.

이 무렵의 나는 백지 이력서를 칸이 모자랄 정도로 채웠을 뿐 아니라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대학로가 어디인지 강남은 어떻게 가는 것인지조차 모르던 시절이 있었냐는 듯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곳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삶을 살다가 여러 학교,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과 만나는 자체가 신기한 일상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와는 다르게 정말 색다른 경험을 가진 대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공모전에 낼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카페에서 밤을 새는 모습, 학생 신분임에도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아르바이트 뿐만 아니라 별의별 수단으로 돈을 벌어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학생 등이 나에겐 신선한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휴학을 하며 처음에 목표했던 자격증도 물론 취득하였고 틈틈이 공모전도 하고 국내외로 봉사활동도 다녔다. 결론적으로 돌아봤을 때 그 당시의 휴학 기간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누구와 경쟁해도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스펙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던 대학생이 휴학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알게 된 것이다.

스펙업설립자 2021.09.0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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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3-휴학, 그리고 1등

막상 휴학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해서 나름의 목표를 정하였다. 자격증을 따거나 기타 여러 스펙을 쌓아서 백지 이력서에 뭐라도 채워보는 것을 우선 순위로 삼고 어떤 것부터 해볼까 하다가 학교 울타리 밖 세계로 나가기로 했다. 중국에서의 경험은 다양한 견문과 시야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고 이내 학교 밖에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누가 무료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것도 거절할 정도로 무언가 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었지만 취업 시장에서 생존하고자 그 귀차니즘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흔히 대외활동이라고 불리는 여러 프로그램들에 지원하였다.

결과는 처참하였다. 글을 좀 쓸 줄 안다고 자부했지만 지원한 대외활동은 모두 탈락하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간단하였는데 역시 백지 이력서가 문제였다. 대외활동 지원서에도 나는 도대체가 쓸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실망할 겨를조차 없었다. 다시 도전하던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대외활동에 합격하였다. ‘독도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매주 독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최종적으로 독도를 탐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참여에 의의를 두면서 지켜보니 내가 속한 팀은 교육을 받는 내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어떻게 시작한 것인데 성과 없이 끝내기는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아카데미의 최종 프로젝트는 독도 홍보 블로그를 만드는 것이었고 나는 팀원들에게 무려 6개 언어를 사용하여 블로그를 만들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다행스럽게도 팀원들이 각자 배운 제2외국어가 모두 달라서 불가능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각기 자신 있는 외국어를 선택하여 밤까지 새면서 최선을 다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완성된 6개 언어 블로그를 하나의 홈페이지로 만들고 동영상도 제작하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독도아카데미 수료식이 있던 날 내가 속한 팀은 1등을 차지하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표창장을 수상한 것이다.

스펙업설립자 2021.08.3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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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업 탄생기] #2-중국에서 보낸 시간

남들이 인턴이라는 스펙을 쌓으며 보낼 겨울방학에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학교에서 보내주는 1개월 중국어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타지에서 처음 해보는 공부를 하면서라도 의미 있게 방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턴을 못 하는 대신이라고도 위안을 삼았고 머리를 식히기 위함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공대생이 중국어는 배워서 뭐하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중국으로 항하였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다. 역시 문과 체질이었던 나는 빠르게 중국어를 습득하여 음식점에서 주문도 하면서 소소하게 여행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교류하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처음으로 대학생활을 제대로 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공부도 제대로 하였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사실 그 전까지는 노는 방법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중국에서는 단순히 놀면서 시간만 보낸 것이 아니라 시야와 견문을 넓히는 데에 주력하였다. 우리 학교 다른 학생, 중국에서 만난 다른 학교 학생, 그리고 그 외 여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학교는 물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모르던 세상에 대해 공부했다.

어학연수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졸업이 코앞인데 그대로 4학년을 맞이하면 내 성적은 역시나 변함없을 것 같았다. 문제의 백지 이력서도 전혀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졸업 후 결과는 뻔하였다.

‘이러려고 대학교에 온 건 아니지 않은가?’ 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해결책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휴학 신청을 하였다. 원래 군대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휴학을 안 하려고 했지만 무작정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스펙업설립자 2021.08.2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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