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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놓친 기회를 시간이라고 할 때, 한 회사에 "시간 멈추기"를 할 용기를 키웁시다.

산소같은남자 2023.04.30 작성


안녕하세요. 산소같은남자입니다.
우리는 유년시절이라는 시간을 거쳐 왔고 학교라는 교육기간을 거쳐왔고 사회생활이라는 또 다른 길을 거쳐가려 합니다.
물론 그것은 선택의 차이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 결국 자신의 몸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 투자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야 할 수 있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성인"이라는 성장한 후에 회사라는 사회에 직임을 하고 이행하게 되고 있는게 일반적이지만,
지금 현재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너튜브,파프리카 같은 영상매체로 초등학생 이하도 한 "회사"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즉, 성인이 월급을 받고 연봉을 받고 호봉을 올려서 내 역량을 올려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라는 이야기는 진짜 역사에 묻힌지 오래입니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일하는 나이때가 낮아짐으로써 한편으로는 한 평생 100살을 기준으로 일하는 기간은 더 늘어나는 아이러니가 생겼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 즉, 직장인을 우리는 흔히 일충이라고 하여 일하는 벌레로 여겨졌습니다.
그 일충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래동화에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동물이나 그 직업에 관련해서 빗대어서 이야기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처럼 개미는 여름이라는 시간동안 부지런히 일하면 겨울이라는 시간에 굶주림 없고 베짱이처럼 행동하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부지런함.
또는 흥부와 놀부처럼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나면 다음 해라는 시간에 제비가 박씨를 주고 돈이 들어오면 형제를 부양하는 권선징악과 우애.
또는 금도끼와 은도끼처럼 진솔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당장이라는 시간에 금,은도끼 두마리 토끼를 얻을 수 있는 성실함.
또는 은혜갚은 까치처럼 먹이사슬에 관여한 어느 한 선비가 천년묶은 그 뱀의 신랑을 죽임으로서 제비는 살렸지만 결국 그날 밤 거래를 하게 되고
새벽이 되는 시간까지 종을 울리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그걸 제비가 듣고 목숨을 바쳐서 선비를 구한 희생.
등등등 많은 전래동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은 이게 먹힐까요?
지금은 베짱이가 더 인기가 있고 돈을 더 많이 벌고 그 나이때는 더 낮아지고 있으며 구독과 좋아요를 요구하는 일이 더 늘고 있습니다.
흥부처럼 살다가 금은 보화를 얻는 일이 진짜 현실적으로 있을까요? 현재는 놀부처럼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금도끼,은도끼는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 했는데 더 많은 공짜 해택을 준다? 욕을 안먹었으면 다행이겠군요.
은혜갚은 까지의 경우는 자기 목숨을 바치고 타인을 구한다? 과연 그런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둘다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방법을 모색하거나 애초에 자연의 법칙인 먹이사슬을 건드린 선비가 문제 아닐까요?
거기에다가 수십년간 발생하고 있고 지금도 지구온난화로 기온의 상승과 오존도 위험해서 탄소중립과 ESG라는 명목으로 지구의 기온을 낮추려는 큰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이 뿌린대로 거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위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면 아마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옛날같지 않다는 것은 짐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직설적인 표현에는 조류,포유류,파충류,어류,벌레 등등 동물들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왜 동물에 빗대였을까요?
 그것은 "인간존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 더 멋지기에 사람을 깎아내리는 언행은 삼가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인간존중은 행해지고 있으나 그 빈도를 보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주의의 확고와 그 시점이 낮은 연령층으로 전도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산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과연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면서도 실제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100년도 안돼는 시간 중 성인이 20년이라고 한다면 정년 퇴직인 환갑을 기준으로 대략 40년 정도를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태어나서부터 또는 5살 쯤부터 일을 하고 있는 애들이 늘고 있고 의학의 발달로 환갑이 넘는 나이에도 일을 하는 분들도 더러 보였을 것입니다. 즉, 3~40년전의 예상이 적중한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되었습니다.
그럼 결과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더 늘어난게 아닐까요? 워라벨은 하루의 일과를 정하는 것이지만 결국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주 5일 일하는 것은 같아집니다. 일은 똑같이 하고 시간만 줄어든게 맞을까요? 오히려 전체 시간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끓는 물에 계란을 삶는다고 가정할 때, 100℃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이는 것과 안 넣고 끓이는 것, 80℃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이는 것과 안 넣고 끓인 것,
이 네가지를 비교하고 시간을 쟀을 때는 각기 다르겠지요.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것은 계란이 삶아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 똑같이 삶아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반숙을 먹을지 완숙을 먹지를 결정하고 판단하며 행동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결과물과 목표는 같고 그 방법이나 과정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가지가 더 가미가 되는 것이지요. 시간을 단축시켜서 맛있는 삶은 계란을 먹기 위해 "소금"을 - 유도리와 노련함, 노하우를 - 첨가하는 것이라면 회사에서는 이윤을 창출하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약간의 변수가 발생합니다.
어떤 분은 직접보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학습하면서 배우기에 실패가 있는 상태에서 시작할테고 어떤 분은 100℃ 물에 소금을 넣어서 끓이면 빨리 익고 7분~7분 30초 끓이면 맛잇다라고 검색을 하고 실행하기에 실패가 거의 없을 테고 또 어떤 분은 다른 방법을 찾아서 새롭게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럼 이 중에 시간을 잘 할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 또한 선택한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단편적인 예로는, 첫번째는 실패가 많으니 맛있게 먹는 수는 약간 적을 수 있으나 실패한 만큼 더 먹을 수 있으니 좋아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여기는 어린친구들이나 계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을수도 있겠군요.^^ 두번째는 가장 보편적이기에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드실테고 세번째 경우는 요리연구가나 어느 요식업 개발자라면 적극 선호하겠지요. 즉, 이 간단한 삶은 계란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물며 회사라는 큰 틀이 생긴다면 과연 몇가지의 방안이 있을까요? 거기다가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일처리도 다르니 그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은 와닿을 수밖에 없겠지요. 다만 지금은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너튜브를 예를 들어볼까요? 그냥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굳이 시간을 할당하거나 할애해서 투자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생활하는 것, 어느 식당을 알려주는 것, 먹거리를 소개하는 것, 동네의 명소를 소개하는 것 등 굳이 특정시간을 할당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고 그것을 일이라고 해야할지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그런 일을 하면서 일반 직장인들의 수십배 수백배를 벌기도 합니다.
그럼 이때까지 시간을 우리가 낭비한 것일까요? 결코 그것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이겠지요. 어떤 것을 선호하고 우선적으로 하는 순서를 정한 것일 뿐 그것이 정답도 아니고 본인의 선택일 뿐입니다. 1960~70년대에는 기계가 발달하지 않아서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는 가내수공업이 주축이었고 농업이 주된 일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고 IMF때는 경제가 불안하고 최저라서 아나바다 운동과 아끼는 것이 곧 살아나는 것이라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집에 금도 팔았고,
지금은 영상매체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1가구 시대의 도래로 영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방법으로 전환된, IT와 UX디자인을 넘어 로봇과 코팅,드론의 보편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과연 시간을 제대로 할당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을 할당했다는 표현보다는 "사간 자체를 사용하고 돈을 벌고 있다"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을 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가 일상에 스며들어서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 모두 돈이 되는 것이지요. 한정된 시간 활용이 더욱 폭넓게 이용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그만큼 경쟁률은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접할 수 있을 뿐더러 컨텐츠라는 중복을 낮추려고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구독과 좋아요가, 만나면 "안녕하세요","밥 많이 드셨어요?"라는 인사말이 아닌 "제 채널오세요","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제 SNS 팔로우 하세요."라는 인사말로 바뀐지 오래되었지요.
우리가 흔히 한국인은 정이 많아서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 함께 있어서 좋고 정이 있어서 물건을 살때 조금 더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정(情)이라는 따뜻한 온정은 보이지 않고 "구독과 좋아요","엄지척"을 정(情)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정이라는 마음들이 손가락 까닥에 표현되고 말았습니다. 정이 없어서인지 사랑이 부족해서 인지 촉법이라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도 어쩌면 정이 부족해서 그런 결과로 바뀐 어른들의 잘못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극히 드문 미꾸라지들의 행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민식이법 놀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 그 반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에는 시간이 소모되고 투자되고 할당되고 있지만 정작 그 시간은 정(情)을 주지 않고 눈치도 없이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글을 적고 있는 1분 1초에도 시간은 매정하게 흐르고 또 흘러 한 글자를 적을 때마다 과거를 만들고 그 과거가 글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말이죠. 지금 시간은 금도 다이아도 아닌 "내가 놓친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너튜브를 하면서 사용했다면 그거대로 잘 사용한 것이고 직장인이라면 업무를 하면서 사용한 것이고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면서 사용합니다.
다만, 후회없는 시간 활용이라면 문제가 안되지만 이직이 잦은 사람에게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면 그 이직을 멈추고 시간을 이동시키지 말고 
한 회사에 "시간 멈추기"를 고무적으로 응원합니다. 
그것이 내가 놓친 기회를 멋진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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