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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공무원/사회복지사 직무인터뷰 | 직업 군인에서 상담사로 제 2의 인생을 사는 진짜 사나이 조성구 멘토의 이야기.

당신의 멘토를 소개합니다.

Chpater 243

조성구님과의 인터뷰

전역한 선배들을 보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STRORY 01 About 조성구

성명 : 조성구

직업 : 군 공무원, 사회복지사

멘토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35년 간 대한민국 군인으로 복무하다 지난 2005년에 정년퇴직 한 전역군인 조성구입니다. 지금은 상담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회복지사죠~
35년 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셨는데, 원래 군인이 꿈이셨나요?
처음부터 군인이 꿈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군인으로 생활했지만 저의 첫 직업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공부보다 농사를 중요시 생각하는 집안에서 자라,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답니다. 교회에서 틈틈이 공부를 배워 검정고시를 패스해서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지방공무원이 되기 위함이었어요.

당시에 시골에서 최고 직업이라고 하면, 군청이나 면사무소의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는데요! 시골이다 보니 인문계에 진학하는 것보다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공무원이 되기 쉬웠어요. 그래서 농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제 첫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공무원이었어요.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충청북도 단양 군청의 인공수정소라는 과에 임시직으로 취업을 했었어요.
시골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공무원이 되었는데 군인이 되야 겠다고 결심하셨을 때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일찍 군대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군에 지원하였죠. 처음부터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군대에 입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공군 병201기로 1970년에 입대를 했어요. 그리고 2년 동안 열심히 군생활을 했죠. 그런데 군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덧 전역할 때가 된 거에요. 전역할 때가 되면 군인들에게는 많은 고민이 생기는데, 저도 그랬어요. 전역하고 돌아가면 ‘이미 후배들이 내 자리를 채웠을 텐데 내가 다시 공무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들었고, ‘공무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부모님의 뜻에 따라 농사를 지었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들었죠. 공무원으로 못 돌아가는 건 그나마 괜찮았는데, 당시 저는 농사 짓기는 싫었거든요.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공군간부로부터 하사 제의를 받았어요. 이게 계기가 되어 직업 군인의 길을 택하게 된 거예요.
직업군인을 택할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물론 반대가 심했죠! 저의 부친께서는 6.25에 참전하시고 7년간 군대에서 장기복무를 하셨던 분이었어요. 본인이 장기복무를 해서 그런지 외아들이 군에서 장기복무 하는 걸 원치 않으셨죠. 그렇지만 저는 제 뜻을 끝까지 관철해 직업군인이 되었어요.
군인으로 복무하시다가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대학에 진학하시게 된 건가요?
군생활을 하다가 전역을 한 선배들을 보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학사, 석사 출신의 군인들도 많은데 당시 부사관은 고졸자들이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학력과 경력이 없는 전역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어요. 저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아직 충분히 일할 체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데 일을 할 곳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학력이 생기니까, ‘전역하고도 사회에서 일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저는 1994년도에 수학능력시험을 보았어요. 사실 수학능력시험의 점수는 그리 좋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공부에 손을 놓고 있었던 터라 유수의 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어요. 전문대학 진학도 어려운 상황이었죠. 하지만 저는 꼭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고, 산학 추천제도를 통해 대유공업전문대학(현 동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어요.
군인도 산학추천제도를 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나요?
당시에는 군에서의 경력을 인정해줘서 산학추천제도로 대학입학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장관님께 추천서를 부탁 드렸죠. 꼭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 드리니,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셨어요.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광고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당시 산학 추천제도로 입학할 수 있는 과가 광고디자인학과와 건축디자인학과였는데, 건축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했었기 때문에 광고 디자인학과를 택했어요. 광고라고 하면 왠지 제가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광고 역시 쉬운 분야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학과 공부를 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었죠.
광고디자인을 하셨는데, 현재는 사회복지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사회복지 공부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죠?
대학을 다닐 때 들었던 교양수업이 계기가 되었어요. 사회학과 관련된 교양과목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한 교수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교수님께서 군인들만 보는 편입시험 전형에 대해 알려주시고 대학원 진학도 권유해 주셨어요. 교수님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어 편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전공한 것이 행정학이었어요.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당시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학업에 열정적이었거든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저는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의 1호 남자대학원생인데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어요.
사회복지 공부는 적성에 잘 맞으셨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사회복지 공부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 반드시 실습을 해야 하는데요, 저는 음성 꽃동네에 가서 호스피스 실습을 했어요. 사회복지 하시는 분들에게도 호스피스 실습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해요. 대부분의 실습생 들이 호스피스 실습 3번을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해요. 심적으로 많이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호스피스 실습을 3번 모두 무사히 마쳤어요.
그만큼 사회복지 일이 적성에 맞으셨던 거네요?
적성에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참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적성에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참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처음 호스피스 실습 때는 머리 끝이 주뼛주뼛 설 정도로 긴장했었어요. 운명을 3시간 앞두신 분을 만났는데, 제가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옆에서 기도하는 일뿐이었죠. 그래서 손을 잡고 열심히 기도해드렸어요.

정신 없이 기도하고 있는 중에 그 분은 죽음을 맞이하셨고, 호스피스 기관에 계시던 신부님이 “나이 많은 학생,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천당 가셨을 거에요.”라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그 분의 운명을 알려주셨어요. 그 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나도 사회복지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것도 느꼈어요.
마지막 호스피스 실습 때는 제가 담당하셨던 분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운명하셨는데, 그 때 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뿌듯하고 기뻤어요. 사회복지 실습 때 받았던 감동 때문에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저는 기무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습니다. 군생활을 할 때는 기무대에서 주로 보안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보안업무는 국가기밀누설 차단, 국방기밀누설 차단, 기획, 조사에 관한 업무를 말해요.

처음부터 보안업무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엔 기상 특기로 기상예보관이었습니다. 기상예보관으로 근무하다가 1977년도에 육해공군 전입하사관을 모집했을 때 기무대로 가게 된 것이었죠. 아마 예보관으로 근무 할 때 브리핑에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 기무대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직업군인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일반공무원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요, 직업군인으로서 겪었던 고난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직업 선택을 할 때 내 자신이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것이기 때문에 제 자신이 괴로웠거나 힘들었던 점은 없었어요. 이미 어느 정도 어려움을 예상했고, 군인으로서 이 정도의 어려움은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군인이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기죠. 군인은 정기적으로 전속을 하기 때문에 주거지 이동이 잦아요. 전속을 갈 때, 미혼자들은 혼자 이동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어요. 그러나 기혼자들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동을 해야 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요.

이사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군에서 이사비용도 지원해주고, 포장이사도 가능하니까요. 문제는 가족들의 사회 적응이에요. 거주지 이동이 잦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해요.

특히 아이들이 더 적응하기 어려워하는데요, 저희 자녀들도 잦은 전속으로 여러 번 학교를 전학 다녔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동창이라는 개념이 없죠. 매번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군인보다는 군 가족들에게 어려운 점이 많아요.


          △ 2013년도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조성구 멘토님의 가족

그럼 반대로, 직업군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난 6월 23일, 병무청장이 수여하는 3대 가족병역명문가정 상을 받았어요.
가족병역명문가정은 대한민국에서 약 200가정 정도 선정되는 상이에요. 그런 명예로운 상에 저희 집안의 이름을 올리게 되어 뿌듯하고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꼈어요.

저희 집안은 부친께서 6.25 참전 이후 7년 동안 군생활을 하셨고, 제가 35년을 복무하였고 제 아들이 ROTC로 7년 군생활을 하였어요. 가족병역명문가정으로 선정되려면 3대의 모든 병역 의무자가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해요. 집안의 병역 의무자 모두가 성실히 병역을 수행해 받은 상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어요.
군대 전역하시고 사회복지사로 전향하셨을 때, 구직활동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나이도 많았고,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구직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있었지만 경력이 없어서 사회복지사로서 처음 일을 시작하기가 어려웠어요. 사회복지사에게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경력도 중요하거든요.
처음 시작이 쉽지 않았던 만큼 사회복지사로서 포부도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첫 커리어는 어디서 쌓으셨나요?
사회복지사, 상담가로서의 첫 커리어는 재향군인회에서 시작했어요. 제대군인 취업상담을 하는 업무였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했어요. 당시에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이라는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재향군인회에 응시를 할 때는 사회복지학 석사 수료와 군인으로서의 경험이 득이 되었어요. 관련 전공자이면서 오랜 군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재향군인회 취업지원센터에 센터장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어요.
사회복지사로서 커리어는 어떻게 계속 이어가셨는지,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재향군인회 취업지원 센터장을 마치고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업무를 했어요. 이 때도 상담업무를 담당했는데, 군 수사관 경력을 인정받아서 수사과에서 상담/수사 업무를 병행할 수 있었죠.

이후엔 노동부에서 실업자 취업 상담사로도 근무하였고요, 강남구청 사회복지과에서 상담사로도 근무하였어요. 군에서의 경험과 사회복지사로서의 경험이 어우러져 관련 업무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어요.
군인으로서 35년 경력이 사회복지사로서도 발휘가 되었군요!
군인일 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까 군에서 했던 경험들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저는 군에서 행정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병사들을 만났어요. 군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발생할 때가 언젠지 아세요? 바로 막 훈련을 마친 이병 때에요. 병사들이 군에 적응을 잘 못해서 종종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하곤 하죠. 행정과장직을 할 때, 저는 군에 적응하기 어려운 병사들을 상담해줬었어요. 당시에 저는 쉬는 시간마다 심리학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요.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병사들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네요.

병사들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독거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했던 경험들이 나중에 사회복지사로서 일할 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사회복지사는 아니었지만 군에서부터 이미 상담사로 일하셨던 거네요?
맞아요. 이미 그 때부터 상담을 했었던 거죠. 그렇지만 그 때는 내가 상담을 하고 있는 거란 생각은 못했었어요. 지금도 당시 내가 상담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병사들에게 더 좋은 상담을 해줬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어요.
멘토님께서 상담을 해 준 병사들이 군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뿌듯하셨겠어요.
맞아요. 몇 몇 병사들이 제 덕분에 군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편지를 써 준 적이 있어요. 그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군을 제대하기 직전에 병사들이 저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함께 동고동락한 병사들을 도울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군생활을 잘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비 직업군인들에게 조언 좀 해주세요.
직업군인이 되기 전, 많은 친구들이 배웠던 전공이 있을 거에요. 군에는 다양한 특기가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업무를 하기 어려워요. 전공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너무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만큼 상황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멘토님은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에는 군을 선발할 때부터 엄격한 절차를 거치죠. 그래서 군인이 되기 위해서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거에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뽑자면 저는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인 같은 경우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일하기 때문에 훈련과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군인이 되려고 한다면 자신의 건강을 한 번 점검해봤으면 좋겠어요.

유능한 군인을 선발하기 위해 요즘엔 군인에게도 높은 지식수준을 요구해요. 하지만 전 머리를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지식수준은 따지지 않아요. 군인이 되려면 자신의 건강이 따라주는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직업군인이 되기를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군대는 일반인이 갈 수 없는 특수집단이에요. 특수공무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직업군인이 되려고 마음먹기가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군인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생겨요. 사병들이 군복무 2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많은 군대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직업군인으로서 몇 십 년을 군복무를 하면,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기겠어요. 군인은 사명감과 자부심이 굉장히 큰 직업이니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직업군인, 다른 직업에 비해서 ‘이것 만은 최고다’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직업군인 같은 경우는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 공무원이에요! (하하.) 일반 공무원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니까 다른 공무원보다는 군 공무원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전역군인으로서 제 2의 삶을 살아가시고 계신데, 제대 후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는 군인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에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까요?
군에 있을 때는 투철한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을 갖고 나라를 위해 일하시길 바라고요. 다만 제대를 하기 2년 전부터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길 바라요. 제대 하기 3년 전부터 미리 계획을 세우게 되면 근무에 나태해지기 때문에 안되고, 2년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1년 정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제대하기 1년 전에 군에서 하는 직업보도교육의 시간에는 계획을 점검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군 제대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제대한 후에는 새로운 사회에 바로 뛰어들어가기 바래요. 군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막연히 대학 때 전공했던 것을 살려서 사회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사회가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제대하기 2년 전부터 사회의 변화를 열심히 관찰하고 분석해서 변화에 맞는 일을 선택하시고 준비하셨으면 합니다.
멘토님에게 군인이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군인이라는 직업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요. 전 지금이라도 군에서 저를 필요하다고 불러주면, 전방에 서서 같이 총을 맞대고 일할 수 있어요. 그만큼 군인이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본이 아니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사회복지사로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직업으로 하는 사회복지가 아닌 사회복지를 위한 활동들을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김미형

출판.편집 디자인

담당부서:인터뷰

취재:강용연,김미형

INTERVIEW
강용연
dangmenso2@saramin.co.kr
EDITOR
김미형
dangmenso5@sara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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