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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직무인터뷰 | 28년 언론사에서 청와대 출입기자, 시경캡, 법조대기자를 두루 거친 오풍연 멘토의 이야기

당신의 멘토를 소개합니다.

Chpater 217

오풍연님과의 인터뷰

ATTITUDE IS EVERYTHING.

당신의 멘토를 소개합니다. Chapter 217

파이낸셜 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멘토와의 인터뷰

마음은 대한민국 최고 부자입니다.

STRORY 01 About 오풍연

  • 성명 : 오풍연
  • 직무 : 논설위원
  • 기업 : 파이낸셜 뉴스
  • 경력 : 28년

오랜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은 멘토, 오풍연 멘토님이 풀어내는 기자의 세계 속으로


서울신문에서 26년 기자생활을 하시고 파이낸셜 뉴스에서 논설위원으로 영역을 확대하기 까지 그 동안 해오신 일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1986년 12월 16일에 서울신문 기사로 입사 작년 2월7일까지 근무하였습니다. 작년에 서울신문 사장에 도전했다가 떨어졌습니다. 25년2개월 동안 깨끗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겠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서울신문 사장에 지원을 하려면 회사에 사표를 내야 합니다. 현직 사원 중 유일하게 혼자 사표 내고 도전을 했지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작년 9월부터 대경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강의를 나가고 있었습니다. 지인이 ‘파이낸셜 뉴스’에서 논설위원을 뽑고 있는데, 하지 않겠냐며 제안해서 10월 4일부터 ‘파이낸셜 논설위원’으로 근무 중입니다.
26년 가까이 기자직에 몸담으시면서 활동하신 분야도 말씀해주세요.
하고 싶은 것을 다해봤습니다. 시경캡, 법조반장, 국회반장, 기자세계에서 꽃 중에 꽃이라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거쳤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 기자단 간사를 지냈습니다. 논설위원도 3번하고, 서울신문까지 합치면 4번을 했습니다. 법조 대기자(법조 전문기자) 우리나라 1호이고, 법무부 정책위원도 3년을 했습니다. 안 해본 것이 없었기에 서울신문 사장도 도전을 했었습니다.
기자라면 논설위원이라는 자리를 많이들 꿈꾼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임하셨나요?
대학을 다니던 당시 문과는 고시 공부 아니면 언론고시를 많이 했습니다. 기자를 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철학과를 지원 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으면 법대를 가라고 하셨겠지만, 돌아가시고 나서 일부러 철학과를 지원했습니다. 마음대로 살아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기자는 전공불문이고, 학점을 많이 보지 않았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학점이 2.99였는데 졸업 평균 3.01입니다.(웃음) 철학과를 가면 10명 중 다섯 명은 철학과를 가고 싶어서 온 것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공부를 못해서 갑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정신차려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잘될 수 있었습니다.
겨우 넘긴 학점 커트라인과 기자, 논설위원까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나를 믿는 것. 나를 믿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불행하기도 합니다. 멘토가 없기 때문이죠. 어려서 시골에서 부모님 없이 혼자 올라와서 살았습니다. 조언을 구할 사람 없이 오직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믿을 것은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떳떳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목표가 있었으면 욕심이 생겨서 집도 좋은 곳으로 옮기고 했겠지만, 목표가 없기 때문에 20년째 허름한 아파트에서도 계속 살고 있습니다. 계획이 없고 편하게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중시하기 때문에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날카롭고 논리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셔서 놀랬습니다.
장인어른이 연애할 때 기자라니까 반대했더라구요. 기자는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겸손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겸손을 앞세우면 어디가서 욕은 안 먹어요. 항상 상대방을 높이고 덕담하고 칭찬하니까요. 그만큼 감사하단 말 달면 스스로도 착해집니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신가 봅니다.
88년 검찰 출입할 때 별명이 ‘젠틀맨’이었어요. 영국신사라고 해서. 그게 올가미가 된 듯 합니다. 몸에 밴 게 자연스럽습니다.

STORY 02 회사, 그리고 일

오풍연 멘토님과의 인터뷰 사진

KBS PD도 합격하셨는데 기자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여자친구(현재 부인) 친구들이 PD되면 바람핀다고 해서 바로 앞에서 합격종이를 찢어버렸어요. 애초부터 기자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취업이 안되니까 PD도 지원해 본거죠. 아무래도 만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니까 바람을 많이 피웠을 거라고 주변에서 그러죠.
담담하게 말씀하시니까 더 로맨틱한데요! 스스로도 기자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요.
기자란 직업이 좋은 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대통령이나 거지나..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니까 적성이랑 맞았던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그 사람들이 가지게 되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기자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에피소드 있으세요?
박종철 사건(리포터설명: 1987년 1월 14일 조사 중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에 중앙대 의사가 소환이 됐었어요. 그 사람이랑 저랑 같이 사진이 찍혔는데 마치 내가 검찰이 된 것처럼 나왔습니다. 이렇듯 역사의 매 순간마다 기자가 있는 겁니다. 12ㆍ12, 5공비리 사건에서 장세동이 구속될 때 대표로 엘리베이터에서 취재했습니다. 같이 내려오면서 얘기 나눴어요. 밤새 취재하느라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남자는 세 마디라는 겁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남자는 떳떳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하고요.
기자는 역사의 매 순간마다 있지만 언제나 아웃사이더입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취재하기 때문에 이너써클이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진실에 가장 가까운 데 있죠.
제3자 입장이지만 항상 가까운 자리로 보입니다. 동시에 많이 부러워할 자리이기도 하죠?
김대중 대통령의 오른쪽이 항상 제 자리였습니다. 신문기자 대표가 청와대 기자단 83명 대표였습니다. 항상 장관, 수석 200-300명 영빈관에 모아놓고 마이크 잡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마이크에 대한 두려움, 떨지 않는 배짱이 생겼어요. 대통령을 앞에 두고 호령을 했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그 점은 고맙죠.


          △ 고 김대중 대통령 오른편에 앉아계신 오풍연 멘토


듣기만 해도 짜릿한데요.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고 그만큼 어깨에 얹혀진 무게감도 클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버텨내기 어렵지 않은가요?
사명감이라는 것은 거창한 말이고, 기자도 생업이죠. 돈을 버는. 그렇지만 열심히 하면 뭔가는 이룬다는 생각은 듭니다. 얼마나 성실하고 주관이 있는지. 소신이 중요합니다. 소신이 있어야 사명감도 있구요. 하지만 반드시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주관.
기자에게 소신, 소신에서 나오는 주관이 없으면 흔들리는 것은 누구보다 쉬운 일이겠네요.
강한 자기와의 싸움이죠. 자신만의 주관을 세우는.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당황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않습니다. 당황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기 때문에 항상 차분하게 합니다. 이것은 남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신감, 즉 자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는 익숙해져 있고, 오히려 편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철학이 선 것 같습니다.
남한테 나쁜 짓 않고 한번도 험담 한 적이 없어요. 하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감사함 고마움 입에 달고 삽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은 대한민국 최고 부자일겁니다. 부러운 게 하나도 없어요. 물 흐르듯이 오늘 최선을 다하니까요.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은 분명히 와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글이 ‘오늘의 의미’에요.
어떻게 보면 그게 올곧음인데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있습니다. 그걸 의식을 안 하죠. 내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죠.
멘토님처럼 기자 생활하면 힘든 거 아닌가요?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저는 제가 자연스럽고, 철저하고 그렇죠. 절 보면 질린다는 거에요. 너무 빈틈없고, 허튼 소리 않고 예절 바르니까 어려워 하더라구요. 몸에 베어서 자잘한 실수들도 안 해요. 저는 자연스러운데 하지만 상대방들은 그게 질리고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방 눈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더라고요. 다 용서하고 전부 이해하고요. 아내가 그래요. 짜증 좀 내보라고. 자기가 판단할 때는 짜증낼 상황인데 오히려 웃고 있으니까요. 아내는 싸웠다고 하는데 난 싸운 기억이 없어요. 항상 웃고 있으니까.
약속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와의 약속이라고 하잖아요. 사람들이 자기한테 관대하고 남들한테 엄격한데..
남들은 작심삼일, 작심한달이라고 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게 없어요. 저는 자연스러워요. 한다면 하니까. 저는 저에게 굉장히 엄격해요. 나와의 약속이 가장 최우선이죠. 나에게 엄격하면 성공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실패할 일이 줄어들죠. 남들이 볼 때는 질린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웃음)
남에게 이렇게 하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죠?
간섭을 하지 않아요. 부하직원에게도 책임만 져주고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한번 해봐!‘ 이런 식으로 주변에게 대하기 때문에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에서 주변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이상은 배려하지 않아요. 그건 편협한 거죠. 상대방이 편협한 것까지는 배려하지 않죠.
그럼 기자 생활하면서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방향을 세우고 철저하게 계획아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셨나요?
아니요. 불가사의죠. 하지만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자리는 다 했어요. 심지어 노조위원장도 했죠. 980명이나 되는 노조의 위원장. 사람들이 제가 노조위원장 했다고 하면 안 믿어요. 술도 많이 먹잖아요.
흘러가는대로, 겸손하게, 오늘 최선을 다하면서 살기 위한 소신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약속은 100% 지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절대 항상 먼저 도착하고,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습니다. ‘어느 페친과의 만남’이라는 에세이도 썼는데, 그 분이 저보다 먼저 와 있었어요.
이번 에세이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연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걸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메시지, 어떤 전화에도 답변해주니까 인연이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연락을 안 끊고 사람을 안 가립니다. 거지가 됐든, 대통령이 되었든 하나하나 누구든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약속으로 가득찬 3월 달력


그런 내용이 에세이에 많았습니다.
전체가 다 사람 얘기입니다. 어떤 편에서는 여러 사람인 경우도 있고, 한 사람인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 그대로 적으니까 소재 때문에 고민하진 않습니다. 일상 그래도 옮깁니다. 잘 쓸라 그러면 테마를 정해야 해서 머리가 아파요. 사설도 칼럼도 머리 속에 있는 거 가지고 쓰니까 고민을 않습니다. 여기 다 창작이고 인용을 한 게 없습니다. 사는 모습 그대로니까요. 잘 썼던 못 썼던 그대로 평가를 받겠다는 생각입니다. (웃음)
글 쓰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글을 빨리 씁니다. 남들보다 글 쓰는 속도는 몇 십 배는 빠릅니다. 사설은 20분 정도, 칼럼 같은 경우도 10장짜리 30분 정도. 항상 머리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되어 있고 쓰는 게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되기 전에 글을 많이 쓰셨었어요?
자랑같은데 열심히 했어요. 수습기자가 끝나면 경찰기자로 가요. 저는 그때 법조기자로 갔어요. 사람들이 법대 나온 줄 알아요. 법조기자, 법조 대기자를 했다고 하면.
책도 많이 읽으세요?
많이 안 봐요. 어폐가 있는데 자꾸 보면 따라 쓰고 인용하게 되요. 창작을 하려고 의도적으로 문화보다 경영서적을 많이 봐요.
나름의 장르가 많잖아요. 기자 분야의 내용을 제의받지 않으셨어요?
많이 받죠. 기자가 쓴 책은 재미없다고 안 팔려요. 보통 신문에 냈던 것들 개작을 해서 신선도가 떨어지거든요. 창작을 강조하는 것이 모방을 탈피하기 위해서에요. 아이러니이지만.
익숙한 분야가 아닌 에세이 작가로 책을 낸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면서 어찌보면 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책이 인생에 큰 변화를 준 건 사실이에요. 대한민국에 기자는 많단 말이에요. 제가 들어올 때(86~90년 대)는 경기가 좋을 때라 기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때 들어갔던 기자들이 은퇴하고 있단 말이에요. 현업에서 갈 때가 없는 거에요. 그래도 저는 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게 에세이집을 잘 썼던 못 썼던 6권을 냈으니까 학교에서 소개하기도 좋고 외부 강의도 들어오고. 그게 어쩌면 생업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이번에 출간한 책'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신 오풍연 멘토


기자로서, 에세이 작가로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집중력이 좋아서 에세이 집이나 소설을 잡은 것들은 끝을 봅니다. 글도 집중해서 쓰고, 빨리 하고. 공부도 모든 면에서 집중을 하고 열심히 합니다.

STORY 03 멘토의 빛나는 조언

오풍연 멘토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사진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한 자기 주관. 그래야지만 후회없이 기자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여당, 맘은 야당이면 안되잖아요. 사람마다 진보적인 경향이면 한겨레나 경향이 맞고, 보수적이면 조중동, 서울 신문은 나라에서 하니까 가장 중립적이죠.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여자 같은 경우에는 희소가치가 높습니다. 남자는 많으니까.
항상 기자들이나 기자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신문사 탓하지 마라 라고 해요. 신문사마다 대우가 다르니까. 물론, 주요 일간지는 대접을 받아요. 하지만 전 장관, 총장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어요. 튀는 행동하지 말고. 열심히 하면 알아줘요. 굳이 튀지 않더라도.
그리고 염두해 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돈을 벌고 싶다면 기자는 하지 마세요. 벌 수가 없어요. 대학 다닐 때 종합지나 방송국에 10명이 안 됐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쪽은 PD, 한 쪽은 기자니까 얼마나 주변에서 부러워 했겠어요. 처음 입사할 때 서울신문 연봉이 60만원이었어요. 그때 삼성, 대우, 현대가 26만원, 28만원이었어요. 5년이 지나니까 올림픽지나고 기업이 좋아져서 역전이 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 때 신문사, 방송사 떨어진 애들이 이제 기업 중역이 됐어요. 신문사 국장 연봉이 1억 받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수억씩 받는 단 말이죠. 역사 현장에 있다는 것은 뿌듯하고 해볼 만 합니다. 돈은 못 모읍니다. 앞으로도 언론사가 나아질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밥 사는 기자가 되라. 밥값을 모르는 기자가 많아요. 얻어먹는 사람이 많아요. 아들한테도 그럽니다. 계산할 때는 앞에 서라.
기자가 밥을 얻어먹고 다닐 정도라면 뒷거래가 있을 수 있지 않나요?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불의와 한번도 타협해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신념이고.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일반 직장인은 회사에서 회사 내부 사람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기자는 조직 외에서 만나는 일이 많아서 외부에서 부탁, 청탁도 받기 쉬워 보입니다.
저는 부탁하면 다 들어줘요. 할 수 있는 한. 물론 부정적인 청탁을 절대 들어주지 않죠.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어요.
돈을 쌓아들고 와서 부탁한 사람이 두어 사람 있었습니다. 근데 야단을 쳐가지고 더 친해졌습니다. 얼마나 감동했겠어요.(웃음) 다른 사람 같으면 거절할 텐데 야단을 치니까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오면서 참기 힘든 일이 있으셨나요?
느낀 적 없습니다.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적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힘들었습니다.
정말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아무 목표도 없이. 하지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목표가 없는 것이 목표죠.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의도한 것은 없지만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합니다.
앞으로 꿈은 무엇인가요?
논술위원도 하고 교수도 하면서 하고 있으니까 크게 불편함이 없어요. 물론 2군데에서 사장 제의가 들어왔지만, 전 항상 지금 저에게 만족을 해요. 하지만 자신감이 있죠. 이번에 서울신문 사장에 떨어지고 백수생활도 했지만 그게 더 큰 도움이 되었죠. 깨달음도 있고.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다니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게 즐거워요.
마지막으로 신입사원, 사회초년생 기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오버하는 것. 지나친 것.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오버하는 거고,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절대로 정직해야 합니다.



side STORY 리포터 후기

기자를 인터뷰하게 되었을 때, 떨렸습니다. 누구보다 인터뷰 프로인 기자에게 질문한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편견도 씻겨 내려갔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재 위치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서 누구나 바라는 자리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때로는 의욕이 앞서 그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당부서
사람인 콘텐츠 마케팅팀
취재
김정현
hahaha62121@gmail.com
제작
김정현
hahaha6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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