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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합격자소서

LG디스플레이㈜

2013년 상반기 LG디스플레이 합격자 자기소개서 05

01. 자소서 항목

  1. 1. 도전적인 목표를 정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특히, 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점과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
  2. 2. 부족한 지식이나 역량, 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사례를 기술해 주십시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 계기와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
  3. 3. (학창 생활, 사회 경험 등을 통해)상대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었던 경험을 기술해 주십시오. 당시의 상황 및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
  4. 4. 상황을 보는 시각과 견해의 차이가 많았으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원만한 결론을 도출하였던 경험을 기술해 주십시오. 당시 의견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어떤 사항이었고 어떠한 방법으로 결론을 도출하였는지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

02. 합격 자소서

지원분야R&D(연구개발)
  • 1. 도전적인 목표를 정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특히, 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점과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닫기
    [2009년 첫 단독 프로젝트 '캐나다 땅 밟기']
    2006년 3학기 통산 누계 평점 2.21. 암담한 결과였습니다. 군대는 바로 입대하는 쪽으로 굳어졌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제대 후에 복학을 하면 지난 흔적을 없애기 위해 졸업할 때까지 공부만이 답이었고 졸업할 때쯤 되면 취직 준비를 해야하는 쉴틈없는 생활이 이어진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였습니다.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 가기'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자금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자발급이었습니다.
    2006년 9월 입대 후 2008년 8월 제대까지 100만원을 모은 후 제대 후 안산에 '캐논 비즈니스 솔루션'공장에서 메뉴얼 포장 업무로 2009년 2월 까지 총 420만원 총 520만원을 확보하였습니다. 다음 비자발급은 어학원을 통해서 비자발급 준비를 하게 되면 수수료 비용만큼 돈이 소모되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 '빨간 깻잎의 나라'같은 카페 커뮤니티를 통해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시작이 군입대와 함께 시작하였기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을 카페에서 활동을 하며 캐나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비자발급 경로를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하며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3:1의 경쟁률이 있었지만 2년간의 시뮬레이션과 적극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며 준비한 결과 오프라인 모임자 전원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조건을 갖춘 후 2009년 3월 인천 - 나리타 - 벤쿠버 - 토론토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자 학교에서 이민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7월과 8월에는 캐나다,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 11월 귀국을 하였고 다음학기인 2010년 첫 학기 복학 후 평점 3.4의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또 생활하며 생긴 자신감으로 위축되었던 자신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목표가 생기면 인생이 즐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LG Display에서 고객이 즐거울 수 있는 특히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Display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프로젝트 리더가 되겠습니다.

    [목표가 같으면 동반자가 됩니다]
    2012년 12월 말부터 2013년 3월 중순까지 해외건설협회주관의 '제10기 대학생 해외건설/플랜트 장기 인력양성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이유는 작년부터 언론에서 계속 나왔던 해외플랜트 산업에 대해 알고 싶었고 모든 기업들이 말하는 글로벌 마인드 글로벌 인재 그리고 영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5명의 인원은 건축, 토목, 전기, 기계, 화공등 여러 이공계열 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졸업예정자나 기졸업자가 대상이었던 교육이었기에 그들 모두의 목표는 취직에 있었습니다. 25명은 총 3개조로 9명 8명 8명으로 나눠졌는데 저는 3조에 편성이 되었고 조장이 되었습니다. 이 교육의 특징은 수료식까지 총 3번의 시험입니다. 3번의 시험의 총계로 1~3등 까지는 상을 받고 평균 60점 이하는 과락으로 교육수료를 못하게 규정되었습니다. 사실 상에도 관심이 많아서 시험전에는 내용을 요약을 하고 공부하였는데 조원들이 과락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요점정리를 돌린 것이 결국엔 모든 수강생들에게 돌려졌습니다. 25명의 학생들은 한 주 한주가 지나면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어느새 형제같이 친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2등으로 상을 받을 수 있었고 다른 모든 학생들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수료하며 서로 축하하였습니다. 경쟁이 격했다면 나올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습니다. 서로 목표하는 바가 같다면 그들은 금새 가까운 사이가 되고 동반자로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LG Display에 입사 후 팀원들과 합심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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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부족한 지식이나 역량, 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사례를 기술해 주십시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 계기와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상세
    [C언어 공략기]
    공업고등학교에서 전자기계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따라서 대학 입학시에 실기에 관해서는 다른 어떤 동기생들보다 우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 있었습니다. 전공 학술동아리 COMP에서 실제로 논리회로식 전개나 회로제작과 공작기계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2학년 선배들 보다도 높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선배들은 C언어를 공부하라고 조언하였지만 C언어 공부를 미뤘습니다.
    C언어 공부를 다시 듣게 된 것은 복학한 2010년 1학기 때였습니다. COMP활동을 하면서 프로젝트팀을 꾸리게 되었는데 '회전 전광판' 제작이었습니다. 팀원은 4명이었고 2006년과 마찬가지로 임무 분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06, 08학번 동생들은 HW나 SW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2010년 새로 들어온 동기친구와 저는 SW능력이 동생들보다 낮아서 자연스럽게 05학번이 HW를 담당하고 동생들이 SW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SW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들의 경우는 HW와 SW의 두 부분이 모두 이해하였기에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서도 주도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회전 전광판'은 2010년 10월 OO대 전자전시회에 출품되어 동상을 수상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4명의 인원이 4명 모두 주도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면 보다 좋은 작품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SW능력을 올리기 위해 COMP에서 이뤄지는 C언어 강의와 개인적으로는 윤성우의 '열혈 C언어'를 독학하며 C언어를 공부했습니다. 또한 SW어 능력을 보다 높이기 위해 전자공학부 학부에 개설되어 있는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이 함께 구성된 과목인 '소프트웨어 개론'을 수강하여 B+성적을 받을 수 있었으며 한 단계 높은 과정인 '임베디드 시스템 설계'과목을 이수하였습니다. 이후 프로젝트에서 HW와 SW전반에 걸쳐서 폭넓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LG Display에는 단순히 HW와 SW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직무로 세분화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직무에 한가지 역량만 갖고 있다면 문제 해결에 있어서 창의적인 방법이 도출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그런 이유로 의견등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로서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적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자기개발에 부지런히 노력하겠습니다.

    [100듣고 100번 불러 하모니를 만들기]
    2010년 남자의 자격의 합창하는 모습이 전국을 강타했고 그 기류에 휩쓸려 OO교구의 청년 합창단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노래방가기를 즐겼고 노래를 부르는데 있어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함께 노래를 한다는 것은 달랐고 무엇보다도 노래 파트에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맡은 파트는 베이스 였습니다. 처음에는 베이스 음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 부르다 보면 소프라노를 따라가거나 테너를 따라서 노래 부르곤 했습니다. 함께 연습을 하고 직장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단독으로 연습을 하기도 무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택한 방법은 따로 베이스 음을 녹음해 와서 100번씩 듣고 100번씩 불러보는 단순한 방법으로 몸에 체득 시켰습니다.
    또 한가지 문제가 된 것은 목소리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파트부분은 소화기 되었지만 다른 사람과의 융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모든 연주곡에 단원들의 목소리까지 모두 녹음이 된 음악파일을 100번 들으며 불렀습니다. 그 결과 1년에 두 번씩 있는 정기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베이스와 테너파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단원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성격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모습이나 행동까지도 각자 개성이 있기 때문에 특히 하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하는 자세로 단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입사 후 LG Display라는 합창단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낼 수 있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바뀌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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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학창 생활, 사회 경험 등을 통해)상대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었던 경험을 기술해 주십시오. 당시의 상황 및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상세
    [필요한 곳에 쓰이는 즐거움]
    2010년 복학 후 전공 학술동아리 이외에 새로 'OOO'이라는 중앙 동아리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종교 동아리였던 OOO은 특성상 고학번의 나이많은 학생들의 분포도가 50%이상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곳은 OOO이었으며 나이 많은 학생이었지만 더 많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마음을 더 빨리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2010년 말이되자 여느 동아리와 마찬가지로 총회를 하고 후년의 회장단 선거가 열렸습니다. 2011년은 대학4년중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2학기였고 입회한지 1년밖에 안된 동아리였지만 1년동안 제가 학교생활을 흔들림 없이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동아리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OOO 동아리 회장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3학년 2학기가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동아리와 학기를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짧은 생활을 하고 회장이 되었기 때문에 자칫 동아리를 소흘히 여길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1학기는 휴학을 하고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1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저의 가장 큰 목표는 더 높아진 고학번 비중을 40%초반까지 낮추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2012년도 선거에서는 회장을 꺼리는 자리가 아닌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25명의 인원 중 17명이 3, 4학년으로 한 해가 지난 사이에 68%까지 올랐던 인원 분포는 점점 학업 때문에 발길이 멀어지는 고학번 특성상 동아리 활동이 점점 작아지는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 2학년 비중을 올리기 위해 따로 생각해 낸 방침은 '대상 확대' 였습니다. 2010년 저와 같이 복학 후 혼자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및 편입 후 혼자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포커스로 잡고 홍보를 하였습니다. 대상을 확대한 결과 1학기 초에만 반짝하던 홍보기간은 1년으로 길게 늘려서 상시 입회 가능으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홍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 입회한 14명중 12명이 1, 2학년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48.7%의 성과를 내어 40% 초반에는 근접하지 못하지만 당초보다 20%의 비율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해결 방안은 상당한 관심을 요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동아리 사람들도 잘 챙겨야 했지만 본래 있었던 사람들도 마음 놓고 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존의 인원들이 편안히 느낄수 있도록 2010년에 행해진 행사들인 OOO 먹거리 팔기와 엠티 및 가을 운동회 및 소풍을 기획하고 실행 시켰습니다. 또한 새로이 들어온 인원들이 빨리 정착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이틀에 한번 동아리에서 밥먹기 운동과 중앙 동아리의 특성을 살려 전공별 소공동체를 만들어 케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바쁜 대학생들임을 최대한 감안하여 모든 행사나 모임에는 자율성을 두고 대신에 빠진 인원들은 행사 후 평가회때는 참석시켜서 활동내용을 빠짐없이 익힐 수 있도록 관리 하였습니다. 그 결과 2011년 11월 말에 있었던 총회의 회장선거에는 자진으로 후보에 출마해 선거다운 선거를 하는 모습을 보며 1년간 개인적으로는 더디게 움직였지만 동아리의 변화된 모습을 만들 수 있었고 필요한 곳에 쓰였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단체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습은 공동체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단체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그 단체의 리더들 역시 단체를 이끄는데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힘만 들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 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단체의 지휘계층에서의 관리도 필히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LG Display는 즐거운 직장을 지향합니다. 즐거운 직장 안에서 존재하는 공동의 목표는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LG Display가 LG그룹의 새로운 성공스토리를 창출하는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즐겁게 도전하는 엔지니어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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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상황을 보는 시각과 견해의 차이가 많았으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원만한 결론을 도출하였던 경험을 기술해 주십시오. 당시 의견 차이가 발생한 원인은 어떤 사항이었고 어떠한 방법으로 결론을 도출하였는지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자 이내]상세
    [자기 성찰로 나와 상대방을 이해하다]
    2012년 여름 수원 교구에서 청년 41차 성경연수에 운영팀장으로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초에 첫 스텝으로 참가한 이 후 바로 다음 차수에 운영팀장이 되었기 때문에 일을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임무를 받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8월에 연수가 시작 되기 때문에 6월 말부터 준비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특성상 일주일에 두 번의 모임 중 한번은 기도를 하는 모임이고 다른 한번은 연수준비를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준비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은 장소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행사는 안양에서 이뤄졌는데 맡은 차수 연수부터 화성에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연수를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 사용되었던 메뉴얼의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수정을 하기 위해서 우리 차수의 경험이 첫 경험이 되어 메뉴얼에 수정이 될 것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이동 같은 경우에도 시간이나 거리를 검사해야 하는 치밀함이 필요했습니다.
    갈등은 이 간격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차수 팀장은 기존의 메뉴얼을 최대한 활용하여 준비를 해야한다는 주장이었고, 저는 기존의 메뉴얼은 새로운 장소에 맞지 않고 자칫 다른 스텝들에게 혼선을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메뉴얼은 최소한으로 활용하고 장소에 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7월 초에 시작된 이 견해 차이는 7월 중순까지 이어졌으며 스텝들과의 팀워크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준비모임이 끝난 후 나의 모습을 천천히 돌아본 결과 문제는 저에게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임 자체가 모임을 위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프로젝트 팀입니다. 스텝들 중 50%이상이 스텝이 처음인 사람들이었고 이런 스텝들을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검증이 된 자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기존의 메뉴얼로 10년 이상의 연수 기록이 녹아있는 검증될만한 근거가 있는 자료였습니다. 변수가 있더라도 메뉴얼에 맞추어 행동하면 결과 또한 범위 안에서 나올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성과위주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항상 성과지향적인 준비에 익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안정적인 프로젝트팀에서의 행동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리더에 대한 불신임을 표출함으로서 리더와의 불화가 팀내에 퍼질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잘못을 반성하며 다음 모임에서 리더에게 그 동안의 의견차이에 대한 사과를 하였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 결과 연수기간 동안에는 처음에 우려했던 위험요소를 피하고 사고없이 연수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수를 마친 후 메뉴얼 수정 작업에도 동원이 되어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팀원들의 행동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익힐 수 있었던 경험이었으며 자신의 의견을 내기전에 다시 한번 생각을 깊이 하고 의견이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에도 특정 팀에 배속되어 팀원으로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활동을 함에 있어서 의욕적인 것은 팀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지만 성급하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의사전달은 자칫 팀에 악영향이 있다는 것을 깊게 새기고 있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의견과 발언을 존중하고 내 의견은 다시 한번 생각하여 팀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OOO 대표이사님이 신년사에서 언급하신 "세계 일등이 되는 방법은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도전이 그 답이자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의 실천 행동사항이라 생각 합니다. 입사 후에도 항시 경청하는 자세로 공동의 목표에 도움이 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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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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