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이 400년 고성에서 신제품 발표회 연 까닭은

연합뉴스2017-01-20
후지필름이 400년 고성에서 신제품 발표회 연 까닭은
에도 막부 역사의 현장인 니조성에서 중형 카메라 공개
부활 신화 쓴 고모리 회장 "새로운 역사 열겠다"

(교토=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지난 19일 오후 일본 교토(京都)의 명소 니조성(二條城)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니조성의 중심 건물인 니노마루고덴(二の丸御殿)은 출입이 통제됐던 일부 건물을 개방해 세계 곳곳에서 온 기자들을 맞았다. 가장 안쪽의 작은 전시 공간에서는 이날의 주인공인 후지필름의 신형 디지털 카메라들이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서 깊은 목조 건물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여느 신제품 발표와는 달랐다. 행사장은 어두컴컴했고 화려한 조명이나 이벤트는 없었다. 난방이 전혀 안 됐고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도 없어 취재진은 주최 측이 준비해 둔 핫팩 달린 슬리퍼를 신고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후지필름은 왜 이런 수고를 무릅쓰고 새로운 미래를 알리는 장소로 고성을 택했을까.
19일 교토 니조성에서 열린 후지필름 신제품 발표회   [제공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해답은 니조성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니조성은 일본의 마지막 막부(幕府·무사 정권)였던 에도(江戶) 막부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니조성은 1603년 쇼군(征夷大將軍·막부 지도자)이 된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덴노(天皇)가 사는 교토에 쇼군이 머무를 때 쓰도록 지은 건축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東京)인 에도에 막부를 세워 실질적 수도를 옮겼지만, 여전히 명목상 수도이던 교토에도 거처와 집무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에도 막부는 1867년 개화파에 의해 궁지에 몰린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영주들과 회의 끝에 덴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막을 내렸다. 700년 가까운 일본의 막부 통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당시 회의가 열린 곳이 니조성이었다.
후지필름이 니조성을 신제품 발표 행사장으로 고른 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역사를 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00년대 들어 필름 산업의 쇠퇴로 위기를 맞은 후지필름은 과감한 사업구조 재편을 단행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중심에는 '샐러리맨 신화'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회장이 있었다.
1963년 후지필름에 입사한 고모리 회장은 2003년 CEO를 맡으면서 혁신을 주도했다. 필름 사업은 과감히 축소하고, 의료기기와 화장품 등 신사업에 진출했다. 디지털 카메라 제품도 다양화했다.
그 결과 후지필름은 2007년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조 연설하는 후지필름 회장
고모리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막부의 역사와 후지필름의 과거를 언급하며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이곳에서 열고자 한다"고 밝혔다.
"100년 전에 라이카가 만든 35mm 포맷으로부터 해방, 70년 전 탄생한 일안반사식카메라(SLR)라는 유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한다는 의미로 니조성을 골랐다"는 설명이다.
후지필름은 이날 중형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카메라는 이미지 센서 크기에 따라 소·중·대형으로 구분하는데 센서가 크면 사진을 확대해도 선명한 화질을 얻을 수 있다.
후지필름의 중형 카메라는 내부에 반사 거울이 없는 미러리스 제품으로, 기존 중형 카메라보다 작고 가벼우며 저렴하다.
중형 카메라의 출시는 날로 치열해지는 미러리스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층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가격을 기존 중형 카메라의 5분의 1 수준으로 책정한 점도 후지필름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형 카메라 시장은 여전히 일부 마니아층 위주이고, 전용 렌즈 제품도 부족하다.
급변하는 카메라 업계에선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150년 전 에도 막부처럼 언제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몇 년 후 오늘의 행사가 게임을 바꾸는(game change) 이벤트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고모리 회장의 말이 현실이 될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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