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공무원 말고 뭐가 있겠어요"

연합뉴스2018-05-06
[디지털스토리]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공무원 말고 뭐가 있겠어요"
청년 취준생 3명 중 1명은 공무원 시험 준비…쏠림 현상 심화
"민간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늘려야"…"규제완화·일자리창출 세제 지원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혜영 인턴기자 = "벌써 노량진 생활 3년째예요. 경찰공무원 시험이 다시 다가오면서 초조해져요. 학원비와 생활비를 포함해 매달 100만원씩 부모님께 지원받는 것도 이제는 부담스럽고요. 끼니마다 먹는 컵밥은 물릴 정도지만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 중이에요. 공무원은 제 꿈이니까요."


지난달 30일 서울 노량진에 있는 공무원 입시 학원에서 만난 이 모(27) 씨는 자신을 장수생이라고 지칭했다. 이 씨는 "대학교를 중퇴한 뒤 중소기업에 다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는 "나처럼 학벌이나 집안 등 '스펙'이 대단치 않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공무원 말고는 뭐가 있겠느냐"며 "공무원 시험에 청춘들이 몰리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 씨처럼 공무원의 꿈을 갖고 도전하는 이들은 매년 수십만 명에 달한다. 청년 취업준비생 3명 중 1명 이상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선호 직장 조사에서는 공기업(공사)이 처음으로 대기업을 제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공시족(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지칭하는 말)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 지난해 국가직 9급 지원자 22만8천명…사상 최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께 서울 노량진에 있는 유명 공무원 시험 학원은 수험생으로 붐볐다.
공무원 입시 학원 1층에 마련한 자습실은 수백 명의 학생으로 빼곡히 찼다. 한 수험생은 "새벽부터 나오지 않으면 자리 맡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합격률이 높다고 알려진 한 공무원 입시 학원 관계자는 "하루 평균 15명 이상 상담을 받으러 온다"며 "스크린을 통해서만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이 10곳이 넘지만 대부분 가득 찬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직 9급 시험 지원자는 22만8천368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청년층 취업준비생의 상당수는 공무원 수험 서적을 펴든다. 지난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36.9%가 일반직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전 조사와 마찬가지로 취업 시험 분야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일반기업체는 이보다 16.3%포인트 낮은 20.6%를 기록했다.
공무원 쏠림은 앞으로 더 심화할 전망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13∼24세)이 선호하는 직장 중 공기업(공사)의 비율은 18.2%로 16.1%를 기록한 대기업을 처음으로 제쳤다. 국가기관(25.0%)까지 더하면 대기업 선호도의 3배에 가깝다.



◇ 공정한 선발·고용 불안 해소·안정적인 삶…결론은 '공무원'



"원래 꿈은 헬스 트레이너였어요.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하다 공무원으로 진로를 틀기로 했어요"
공무원 시험을 2년째 준비하고 있는 김 모(29) 씨는 "기회가 가장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이 분야라고 생각한다"며 "대기업은 학벌이 부족하면 서류 통과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고 (나이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는 면에서 공무원 시험만한 분야도 없다"고 덧붙였다.
9급 공무원 시험 도전 6개월 차인 이승현(23) 씨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예전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장래희망도 최근까지 일러스트레이터였다"면서도 "경쟁률도 치열할뿐더러 취업하고 나서도 밥벌이조차 힘들 정도로 처우가 열악해 공무원으로 목표를 바꿨다"고 말했다.



안정적이고 공정하며 일하기도 좋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전국 대졸 청년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동기를 조사한 결과, 직업의 안정성이 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좋은 근무 환경, 공정한 기회(이상 9%), 유리한 보수(3%)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측은 "가중된 청년 실업과 민간기업의 고용 불안이 공무원 시험 응시 과열의 원인"이라며 "적은 야근 등과 같은 좋은 근무 환경과 선발 과정의 공정함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청년층(20∼29세) 실업률은 11.6%다. 지난 1년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김 모(32) 씨는 취업에 거듭 실패한 뒤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김 씨는 "전공 분야를 살려 일반 기업 마케팅 직군에 수십 차례 지원했으나 서류에서 연거푸 탈락했다"며 "계약직으로 취업도 했지만 매년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청년층이 느끼는 고용 시장의 불안정성은 큰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중 절반은 근속연수가 3년 미만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근속연수가 5년 이상인 경우는 38.97%에 불과했다.



청년의 고용 불안은 악화하는 상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역별 고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취업 청년(20∼34세) 중 임시 일용직 비율(고용계약기간 1년 미만)은 증가하는 상태다. 2011년 20.1%에 머물던 임시 일용직 비율은 4년 후 22.2%로 늘었다.
특히 고졸 이하 임시 일용직의 경우, 같은 기간 36.1%에서 44.5%로 10%포인트 가까이 불어났다. 이는 전체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 증가 폭이다.

◇ "공무원 쏠림, 국가손실 17조원"…"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축소해야"



전문가들은 한창 일할 시기인 청년층이 공무원 준비에 쏠리는 현상은 국가 경제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공시생 증가로 인한 경제적 순기회비용이 17조원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일할 수 있는 고급 인력 청년층이 비경제활동으로 포함되면서 생산과 소비에서 큰 규모의 경제적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공시생이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민간 부분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신규 일자리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중소기업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성장하기 좋은 사업 환경 조성이 필수"라며 "일본 등 선진국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 우리처럼 공무원 쏠림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 부연구원은 "미국 등 스타트업 강국은 창업을 위한 교육 시스템도 잘 구축돼 있어 성공 확률이 높고, 사회 안전망도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도 창업에 실패하면 이자 감면 등의 지원 제도를 갖췄지만,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채 단순히 '기업가 정신이 없다'며 청년 인식을 탓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노동 유연화, 고용 지원, 기업 활성화 정책으로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기업 규모가 큰 만큼 일자리 수 증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