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걱정, 설 고향도 못가"…한진해운 선원들 '한숨'

연합뉴스2017-01-25

"생계 걱정, 설 고향도 못가"…한진해운 선원들 '한숨'
법정관리 5개월째 절반 이상 재취업 못하고 무급휴직 상태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지난해까지만 해도 배를 타지 않을 때 명절을 맞이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찾아뵈었지만 올해는 그럴 기분이 아니고, 여유도 없어요."
25일 부산시 중구 중앙동 사옥에서 만난 한진해운 해기사 A(43) 씨는 이번 설에 귀성을 포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직후 타고 있던 배가 선주에게 반납되면서 하선한 그는 지금 무급휴직 상태에 있다.
조만간 법원이 한진해운 파산을 선고하면 영영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배에서 내린 뒤 받은 월급과 연차수당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당장 아내와 자녀의 생계가 걱정"이라면서 "명절이라고 고향에 갈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사치로 여겨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항해하고 싶다' 한진 선원의 외침[연합 자료사진]

해기사 B(32) 씨도 이번 설에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미혼이라 가족이 딸린 선배들에 비하면 경제적 어려움은 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한진해운에 입사한 뒤 7년간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지구촌에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노선을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을 탄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사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으로 장기간 망망대해를 누비면서 느끼는 외로움, 거센 파도 등 악천후를 이겨냈는데 한순간에 회사가 파산의 길에 놓여 심한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산업의 특성에 무지한 정부에 실망해 아예 선원 생활을 접을까 고민도 했지만, 바다를 떠나 육상에서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다른 선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내 다른 선사 몇 곳에 이력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요즘 허전한 마음을 운동으로 달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1일 법정관리가 시작될 당시 한진해운의 한국인 선원은 675명.
해양수산부와 선주협회 등이 나서서 재취업을 돕고 있으나 세계 해운경기가 나빠 선사들이 선박을 늘리지 않는 탓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진해운 짙어지는 파산의 암운[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진해운 해상직원 노조에 따르면 240여명이 이미 회사를 떠났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10월 선원들에게 한 달 뒤 일괄해고를 통보했다가 사내복지기금 정산을 위해 회사가 파산선고를 받을 때까지 남을 수 있게 했다.
이미 회사를 떠난 선원 대다수는 다른 국적선사에 재취업했거나 취업을 확정한 것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이요한 노조 위원장은 "앞으로 현대상선, SM상선, SK해운 등에 재취업할 인원이 130여명 정도 되고, 군 복무를 대신해 의무승선하는 해양대 출신 해기사 30여명도 조만간 다른 회사의 배를 탈 예정이지만, 여전히 절반을 넘는 선원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많은 선원이 앞으로도 오랜 기간 정신적, 재정적 고통을 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 위원장은 덧붙였다.
간부 선원인 해기사 중에서는 컨테이너선만 탔던 선장과 1항사가 특히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1항사로 컨테이너선을 탔던 A 씨는 "세계적으로 컨테이너선의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선사들이 배를 늘리기는커녕 감축하는 추세이다 보니 탱커선이나 벌크선 등 다른 선박보다 인력 수요가 적다"며 "2항사로 직급을 낮춰서 탱커선 등에 재취업을 시도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는데 선사에서 받아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부산시민 대책위, 한진해운 살리기 상경투쟁[연합뉴스 자료사진]

싱가포르에서 압류된 한진로마호에 있는 한국인 선원 8명은 올해 설을 먼 타국의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한다.
이 배는 현지에서 경매절차를 밟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요한 노조위원장은 "9월 초 압류됐고, 지금 남은 선원들은 애초 타고 있던 선원들을 교대해 11월에 승선한 것으로 안다"며 "3개월가량 배 안에 갇혀서 지내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육상직원들도 절반을 넘는 300여명이 여전히 무급휴직 상태에 놓여 있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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