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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뉴스

[마이더스] 점포 줄이는 은행… 늘어나는 디지털 금융난민

연합뉴스2017-08-03

[마이더스] 점포 줄이는 은행… 늘어나는 디지털 금융난민


# 경북 영천에 사는 한모(72) 씨에게 매달 20일은 ‘은행 가는 날’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 은행에 가서 자녀들이 보내준 용돈을 찾아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생활비까지 챙겨 돌아오려면 족히 1시간 이상 걸린다. 은행 직원은 모바일뱅킹을 써보라고 권유하지만 뭐가 그리 복잡하고 누르라는 것은 많은지 도통 엄두가 안 난다.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확산으로 금융지형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굳이 은행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뱅킹(PC)이나 모바일뱅킹(스마트폰)으로 입출금은 물론 공과금 납부와 대출신청도 가능해졌다.
지문, 홍채, 손바닥 정맥 등 생체인증 기술의 발달로 보안은 한층 강화됐다. 소비자도 편리하지만 은행 역시 점포를 줄여 임대료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게 돼 이득이다.

◇ 디지털 친숙한 젊은 층 편하지만 고령자·시각장애인 소외
핀테크는 세계적 흐름이다. 소비자는 물론 은행에도 도움이 되는 변화라 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핀테크의 혜택에서 소외된 ‘디지털 금융난민’이 늘어나면서 소비자 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기준 60대와 70대 이상의 인터넷뱅킹 이용률은 각각 14.0%, 4.3%에 불과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모바일뱅킹·결제를 써본 60대 이상은 5.0%에 그쳤다.
이들은 은행 일을 보려고 더 멀리 이동하고 더 오래 기다리는 불편을 겪는다. 게다가 예금과 대출 금리, 각종 창구 수수료에서도 손해를 본다. 은행들이 핀테크 이용을 촉진하려고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 소비자에게 금리와 수수료 등을 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매장에 간 고령층이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한 젊은이들보다 같은 상품을 비싸게 사는 현상이 금융 거래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시각장애인도 디지털 금융의 사각지대에 있다. 은행들이 음성서비스를 지원하고 말하는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도 내놨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은행 일이 불편하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모바일뱅킹 접근성 점수는 55.8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

점포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는 씨티은행 서울 역삼동 지점. 이 은행은 전체 점포의 80%를 없앨 계획이다. 황광모 연합뉴스 기자


◇ 피할 수 없는 흐름 vs 금융 공공성에 역행
은행들은 점포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7천698개였던 은행 점포는 지난해 말 현재 7천103곳으로 600개 가까이 줄었다. 특히 지난해에만 3분의 1에 육박하는 175개가 없어졌다.
더구나 전체 은행 점포 중 1천899개는 서울, 547개는 부산 등 대도시에 몰려 있어 고령인구가 많은 농어촌 지역에서 금융소비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는 추세다.
특히 씨티은행은 점포를 극단적으로 축소할 계획을 밝혀 논란을 빚었다. 씨티은행은 7월부터 점포 126개 중 80%에 해당하는 101개를 단계적으로 폐점하고 25개만 남길 예정이다. 대신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등 소위 ‘부자동네’에는 수십 명의 직원을 배치한 대형 자산관리 점포를 잇달아 열었다.
은행들은 점포 감축이 핀테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과 정치권, 소비자단체들은 단시일에 급격한 점포 폐쇄는 금융의 공공성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핀테크를 핑계로 엄살을 피우며 효율화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신한금융지주는 올 상반기 2001년 지주사 설립 이래 최대 흑자를 달성했다. KB금융과 우리은행 등도 마찬가지로 유례없는 실적을 냈다.
정치권에서는 점포 대량 폐쇄 시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게 하고, 전국 점포망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매년 은행업 인가를 내주는 방향으로 은행법 개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특정 기술을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주 경계해야 할 상황”이라며 “소비자가 여러 방법으로 금융에 접근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 권리장전”이라고 말했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박의래 연합뉴스 경제부 기자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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