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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액티브] '사라질지 모르는 직업' 가진 이들은 지금…

연합뉴스2019-11-02
[인턴액티브] '사라질지 모르는 직업' 가진 이들은 지금…
톨게이트 수납원·캐셔·운전사·번역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김민호 인턴기자 = "마트에 무인 계산대가 생기고부터 노동강도가 더 세졌어요. 혼자 계산대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게는 6대까지 무인 계산대를 관리하는 일이 더 힘이 들더군요."
10년 넘게 한 대형마트에서 캐셔로 일한 정모씨는 지난해부터 무인 계산대가 도입되면서 손님이 스스로 계산하는 것을 돕거나 주변을 관리하는 일로 업무가 바뀌었다.
한 자리에서 익숙한 계산 업무를 반복하던 때보다 움직임 반경이 넓어지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다양해져서 일의 강도가 더 세졌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에 앞으로 또 다른 기계의 도입이나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 자기 일은 또 어떻게 바뀔까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지난달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의 직접 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진통을 겪던 시점에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더해지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자동화, 무인화라는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막상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안고 사는 이들의 마음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톨게이트 수납원들
지난달 30일 청와대 앞.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경력 7년의 톨게이트 수납원 박주분(53)씨는 시위를 잠시 멈추고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우리를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일이란 것은 가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데 그저 '사라질 직업'이라고 하는 현실 앞에 막막했다"고 씁쓸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사라질 직업을 갖고 일하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함,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세상은 너무도 간단한 말로 정의해버린다"라고도 했다.
박씨는 "세상이 바뀌고 있고 우리 직업이 곧 사라질 것을 우리도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력 구조 조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톨게이트 수납원 문제 역시 사측이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강행하면서 갈등 상황을 불렀다고 생각한다"며 "직업군은 무엇이 있고, 근무자의 연령은 어떻고, 퇴직자와 재직자의 비율이 시기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세심하게 고려해서 변화에 연착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국민의 정서와 수준, 형평을 고려해 국민이 조금 느리면 (정책이) 한발 앞에서 사람들을 끌어줘야 한다. 아장아장 뛰는 아이에게 마라톤을 뛰라고 하면 안 되듯이 산업 발전의 속도도 똑같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무인 계산대를 담당하는 마트 노동자 정씨는 "단순 직무인 우리에겐 진급도 없고 평균 연령이 50대로 적지 않은 나이"라면서 "세상의 변화에 뭔가 대비를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현재의 일만으로도 버거워서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대비한다는 건 사치로 느껴질 정도"라고 털어놨다.

그는 "산업 발전과 사람은 상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빈곤해지면 사회 갈등이나 문제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사회 안전망 마련이나 분배 문제를 개선하는 데 비용을 미리 쓰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경북 지역에서 17년 동안 택시를 몰아온 양순분(65)씨 역시 개인이 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대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씨는 "동료 기사 중에 자녀 교육비가 많이 드는 연령대는 기사 일로 온전히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운전을 마치고 식당 일을 하는 여성 기사나 투잡을 뛰는 남성 기사가 한둘이 아닌데 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대비할 여유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같이 할 만큼 한 사람은 일을 그만두면 그만이라 쳐도 아직 한창인 젊은 사람들이 (직업 상실이라는) 위협에 더 노출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직업의 위기는 비단 육체노동자나 단순 노무직의 문제로만 거론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 노동 중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위기가 점쳐지는 번역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한 S씨는 2일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10여년 전 통·번역 대학원 졸업 직후에도 내 직업이 곧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향후 몇 년간 사라질 직업과 같은 근시안적 현안에 초점을 두기보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노동 문제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적절한 정책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번역가 H씨는 "기술의 발달로 단순히 몇몇 직업의 영역이 바뀌는 것을 넘어 길게 보면 대다수의 사람이 직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는 개인 차원에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므로 당연히 공동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리면 복지의 개념을 재정립한 후 이에 따라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할 텐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17년 발간한 '4차 산업혁명 미래 일자리 전망' 보고서에서 '위기 직업'을 '주요 업무의 특성이 정형화 또는 반복 되어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등에 따라 대체 가능성이 높고 대체했을 때 비용 편익이 있으며 사람보다 더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정의했다.
이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파도일 수 있다"면서 정부에 개인 밀착형 전직 지원 서비스는 물론 재취업 전까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것 등을 주문했다.
csm@yna.co.kr, nowhe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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